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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프로야구 의 역사2 (스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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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1989년

1980년 518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독재자 프레임이 씌워진 전두환은 정권 안정을 위해 우민화정책인 3S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청와대에서 최초로 프로야구 설립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대기업들을 불러들여 투자를 유치하였고 이에 참여하는 기업들에게 각종 세제 혜택과, 행정적, 법적, 제도적 지원을 파격적으로 제공했다. 그리고 논의한지 불과 1년만인 1982년 프로야구가 만들어지게 된다. 대전 OB 베이스, 서울 MBC 청룡, 광주 해태 타이거즈, 부산 롯데 자이언츠, 대구 삼성 라이온즈, 인천 삼미 슈퍼스타즈 총 6개 팀으로 출범했다.

1982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시구와 함께 시작된 프로야구 개막전과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나온 드라마같은 만루홈런 두 개 로 인하여 "이 홈런으로 앞으로 10년은 족히 먹고 살 것"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또한 1982년에는 OB의 박철순이 22연승을 거두고, MBC의 백인천이 4할 타율을 기록했으며, 해태의 김성한은 투타를 겸업하며 3할 타율에 13홈런, 10승을 기록하는 등의 진기록이 세워졌다. 최약체 삼미 슈퍼스타즈의 역대 최저 승률과 특정팀 상대 전패 기록 역시 출범 4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을 만큼 좋던 나쁘던 각종 기록들이 쏟아져 나온 원년 시즌이었다.

1983년의 스타는 누가 뭐라해도 KBO 역사상 전무후무한 한 시즌 30승 투수이자 400이닝을 던진 재일교포 출신 장명부. 전년도 꼴찌팀이자 국가대표 출신 한 명 없는 철저히 무명 선수들로만 구성된 삼미 슈퍼스타즈를 혼자서 3위로 끌어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외에도 OB의 최일언, 삼성의 김일융 등 재일교포 선수들이 대거 유입되었던 때가 바로 이때이다. 삼성의 장효조는 신인임에도 타율과 출루율 1위, 홈런과 타점 3위를 기록하는 등 MVP급 활약을 펼쳤으나 이미 실업무대에 선 적 있으므로 신인이 아니다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신인왕을 뺏기기도 하였다.

1984년은 "져주기 게임"과 "최동원" 두 키워드로 압축된다고 할 수 있다. 전기리그 1위를 차지한 삼성은 후기리그 1위 자리를 두고 다투던 OB와 롯데 중 OB를 피하기 위해 롯데에게 져주기 게임을 시전했다. 그러나 정작 한국시리즈에서는 4완투 4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남긴 최동원, 그리고 7차전 역전 3점 홈런의 주인공 유두열 등의 활약으로 롯데의 승리로 끝나며 삼성은 창피를 당하게 되었다. 최동원은 정규시즌에서도 27승 223K를 기록하며 철완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해태 방수원의 KBO 역사상 최초 노히트 노런 역시 이 해 어린이날에 나왔다.

1985년, 전 시즌 통한의 준우승을 기록한 삼성은 한국시리즈에 가면 지니깐 한국시리즈를 없애버리자는 집념으로 전/후기 리그 1위를 독식하며 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한국시리즈 없이 우승한 팀이 되었다. 전무후무한 7할 승률과 함께 승률왕,타율왕,홈런왕을 독식한 삼성이었지만 한국시리즈가 없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OB가 대전에서 서울(잠실)로 이동하며 리그 최초로 연고이전이 발생했고, 삼미 슈퍼스타즈는 청보 핀토스로 이름이 바뀌며 리그 최초 구단 인수도 일어났다.

1986~1989년도 해태 타이거즈가 통합 4연패를 기록하며 해태 왕조의 시대가 열렸다. 역대 통산 평균자책점 1위, 7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 MVP 3회, 골든글러브 6회 등 가지고 있는 기록들을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의 레전드 투수 선동렬이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고 타선에서는 88~89년 2년 연속 홈런 및 장타왕을 차지한 김성환과 함께 88년 도루왕 이순철과 89년 출루왕 한대화등이 활약했다. 그리고 86년의 김정수, 88년의 문희수 등 한국시리즈에서 나타난 깜짝 스타들도 해태 왕조에 기여했다. 이후 현대, 삼성, SK, 두산 등이 나름의 왕조를 세웠지만 2011~14년 삼성과 함께 KBO를 대표하는 왕조가 바로 해태 왕조이다.

1986년에는 OB가 떠나며 비어버린 대전을 연고로 빙그레가 창단하였으며, 아모레퍼시픽이 청보를 인수해 태평양 돌핀스가 탄생하며 인천은 프로야구 출범 10년도 되지 않아 벌써 3번째 팀을 맞이하게 되었다. 빙그레는 88년에 처음 한국시리즈의 맛을 봤으며, 태평양은 오랜 기다림 끝에 89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88년에 이뤄진 삼성과 롯데의 초대형 트레이드는 양팀 팬들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하였으며 전후기리그가 폐지되며 준PO-PO-KS의 3단계 포스트시즌이 완성되고 전문 마무리 투수가 도입되고 프로야구 전 경기 중계가 이루어지는 등 80년대 후반을 거치며 점점 현대 프로야구의 모습과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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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2

카자미하야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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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미하야토 레벨
좋은정보 감사요

서대문개고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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