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 투수 보호 위해 연장전 축소…근데 승부치기는 왜 외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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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이 지난해 7월17일 울산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경기에서 연장 10회말 터진 빅터 레이예스가 끝내기 만루홈런을 치자 기뻐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제공
야구는 숫자 ‘3’과 관련이 많다. 스트라이크 3개면 아웃이고, 3아웃이 되면 공수 교대가 된다. 라인업은 1번부터 9번까지 있으며 중간에 교체되지 않는다면 타자들은 최소 3번의 타격 기회를 얻는다. 야구공 실밥도 3의 배수인 108개다. 주루가 허용되는 폭은 베이스라인 기준으로 좌우 3피트. KBO리그 연장 규정도 그랬다. 12회(정규리그), 혹은 15회(포스트시즌)였다. 1~9번 타자에게 공격 기회를 최소 한 번씩은 주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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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규리그 연장이 올해부터 ‘11회’로 축소됐다. 참 낯선 숫자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처럼 바꾼 이유에 대해 “2025시즌부터 정식으로 피치 클록이 시행되면서, 특히 투수들의 체력 소모가 가중될 수 있음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KBO는 작년 연장전 결과를 예로 들었다.
KBO리그는 작년까지 정규리그의 경우 12회까지 연장전을 치렀는데 총 59차례 연장전 중 46경기(77.9%)가 11회에 종료됐다. 이 중 31경기가 10회, 나머지 15경기가 11회에 끝났다. 12회에 승부가 난 경우는 6차례, 무승부로 종료된 경기는 7경기였다. 2023년에는 72경기가 연장에 들어갔는데, 84.7%가 11회에 끝났다. 2022년은 83.1%(65차례 중 54차례). KBO는 “연장전 이닝 축소는 선수단 체력 부담을 완화하고 경기 시간을 단축 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전망”이라고 전했다. 앞선 감독자 회의에서는 연장전을 10회만 하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타고투저 현상으로 불펜진 혹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경기를 되도록 빨리 끝내려는 의도는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해 왜 승부치기는 도입하지 않는 것일까. 세계야구클래식(WBC)이나 프리미어12 등 국제 대회에서는 연장 승부치기를 하고 있으며, 무승부 없이 끝장 승부를 겨루는 미국 메이저리그(MLB) 또한 코로나19 때 한시적으로 승부치기를 도입했다가 현재까지 유지 중이다. 다만 방식이 다른데, 국제대회에서는 10회부터 무사 1, 2루에 주자를 놓고 경기하고, 메이저리그에서는 무사 2루에서 공격을 한다. 무사 1, 2루보다 무사 2루 때가 더 다양한 작전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KBO리그에서도 2023년부터 퓨처스(2군)에서 연장 승부치기를 하고 있다. 10회 공격을 무사 1, 2루에서 한다. KBO 관계자에 따르면 승부치기 도입 후 연장 80% 이상 경기가 10회에 끝났다고 한다. 빠른 승부로 투수진 어깨를 보호하는 장치로는 승부치기만 한 것이 없다. 그런데도 1군리그에 도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현장 감독들의 반발이 심해서다. 지난해 말 감독자회의에서 10명 중 9명이 승부치기에 반대했다고 한다. 무사 1, 2루건 무사 2루건 작전의 책임은 오롯이 감독에게 있으니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한 현장 감독은 “작년 기준으로 전체 720경기 동안 무승부로 끝난 경기는 1%도 채 되지(0.97%) 않는다. 무승부가 앞으로 더 많아지고 재미가 반감돼 팬들이 싫어하면 모를까 굳이 경기 운영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을까 싶다”고 했다. 또 다른 감독 또한 “승부치기는 감독, 선수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줄 수밖에 없는 제도다. 운 좋은 팀은 계속 이길 수도, 운 나쁜 팀은 계속 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연장 10회 무사 2루에서 공격이 시작되면 기발한 작전 등이 나오지 않을까.
KBO리그는 올해부터 피치 클록을 공식 적용하지만 메이저리그와 같은 투수판 이탈 제한(견제 횟수)은 빠져서 ‘속 빈 강정’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금 같은 상황이면 경기 시간을 줄이는데 한계가 있다. 투수판 이탈 제한 규칙 배제 또한 감독자회의에서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저리그에서 승부치기, 피치 클록 등 새로운 규정을 도입한 것은 빠른 야구로 젊은 야구팬층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빠르고 역동적인 경기를 선보여 지속 가능한 야구 인기를 창출하기 위함이 컸다. KBO리그도 사상 첫 1000만 관중 돌파에 들떠 있을 때가 아니다. 1000만 관중 유지를 위한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 현장 사령탑들의 스트레스는 이해할 만하지만 조금은 열린 마음을 갖는 것도 필요할 듯하다. 사실, 무승부만큼 재미 없는 야구도 없지 않은가.
김양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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