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 두 선수가 말하는 프로야구 속 ‘데이터’ [경기장의 안과 밖]
본문
데이터는 경기를 분석하고 승리 전략을 짜기 위한 중요한 도구로 자리매김했다. 일본 야구계는 스포츠과학을 적극 받아들여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한국 구단에도 변화가 엿보인다.
2024년 12월21일 열린 한국야구학회 겨울 학술대회에서 임창민(오른쪽)·김휘집 선수가 발표하고 있다. ©한국야구학회 제공
“컨디션이 좋지 않은 투수는 무조건 잘 치는 타자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요?” 삼성 라이온즈 투수 임창민(39)이 물었다. 지난해 12월21일 서울 동국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야구학회 겨울 학술대회에 참석한 청중을 향해서였다. 임창민은 NC 다이노스 내야수 김휘집(23)과 함께 이날 ‘프로야구 선수의 눈으로 본 세이버메트릭스’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지난해 구원투수로 28홀드를 따낸 임창민의 첫 ‘자답’은 이랬다. “이 선수 타석 때는 안 나가야 합니다.” 청중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투수가 타자를 고를 수는 없다. 임창민은 “타자의 볼카운트별 스윙 빈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코스 등을 사전에 연구한다. 정확하게 던지면 타자를 잡을 수 있는 코스가 있다.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내가 진다”라고 말했다. 다른 식으로도 설명했다. “강한 상대를 만나면 단 한 번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 강한 사람은 기회를 여러 번 받지만 약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한 번의 기회’에서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데이터를 파고든다는 의미로 들렸다.
야구라는 ‘전쟁’에서 적을 아는 것만큼이나 나를 아는 게 중요하다. 임창민은 데이터를 통해 자신이 어떤 투수인지 파악하고 있다. “나는 릴리스포인트(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의 위치) 높이가 150∼170㎝일 때 가장 좋은 공을 던진다. 패스트볼 수직 무브먼트 값이 큰, 좋은 투수는 대개 수평 무브먼트가 0에 가까울수록 좋다. 하지만 나는 수직 무브먼트가 좋으면서도 수평 무브먼트가 30㎝ 정도일 때 최상이다. 이 공에 타자 헛스윙률이 높다”라고 표현했다.
임창민보다 13년 늦게 프로에 입문한 국가대표 내야수 김휘집은 경기 기록뿐 아니라 구장에 출근해서 처음 시작하는 가동성·코어 운동부터 웨이트트레이닝, 실내훈련, 야외훈련, 전력분석 미팅, 경기 시작 이후까지 숫자로 표시되는 많은 것을 ‘데이터’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데이터를 통해 체력 향상, 부상 방지, 기량 향상, 경기 플랜 수립을 위한 객관적 근거를 찾고 자신에게 맞는 목표를 설정하려 한다. 그는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되어야 좋은 플레이가 나온다. 슬럼프에 빠진 선수에게는 뭔가 변화가 있다. 데이터를 통해 변화를 확인하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목표를 세울 수 있다. 근거가 있는 훈련을 하면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세이버메트릭스는 넓은 의미로 ‘야구에 대한 객관적 지식 탐구’를 뜻하는 용어다. 그래서 스포츠과학의 한 장르로 볼 수 있다. 1970년대 미국 야구 애호가들의 연구에서 시작해 1990년대 이후 메이저리그 구단 운영의 주류가 됐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소개됐다.
야구는 세이버메트릭스 이전에도 ‘기록의 스포츠’였다. 한국 야구에서 ‘데이터 야구’의 선구자로 꼽을 수 있는 이는 재일동포 출신 김성근 전 한화 감독이다. 그는 1960년대 실업야구 기업은행 감독 시절부터 상대 타자들의 타구 분포를 기록해 야수 수비 위치를 조정했다. 1980년대 프로야구 강타자 장효조는 매일 ‘야구 일기’를 쓰며 상대와 자신을 분석했다. 이런 선수가 적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프로 구단들은 전력분석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LG 트윈스가 1997년 일본 자매 구단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시스템을 수입했고, 삼성은 2년 뒤 그룹 계열사인 삼성 SDS에 의뢰해 자체 시스템을 제작했다.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워낙 좋은 선수가 많았던 KIA의 경우, 전력분석 시스템 도입이 늦은 편이었다. KIA는 2003년 플레이오프에서 SK에 3전 전패로 탈락한 뒤 시스템 도입을 결정했다. 데이터 분석 역량에서 뒤진 게 패인이라는 판단이었다. 1999년 설립된 스포츠 통계회사 스포츠투아이는 2001년부터 전산화된 기록 데이터를 각 구단에 제공했다.
2010년대에는 또 다른 변화가 생긴다. 세이버메트릭스에 영향을 받은 분석가들이 구단에 고용됐다. 이전까지 분석 업무는 야구선수 출신 프런트 직원이 담당했다. 이 시기 구단들은 투구와 타구 궤적을 추적하는 트래킹 시스템을 도입했다. 전력분석 시스템 도입이 가장 늦었던 KIA는 2022년 기술적으로 가장 앞선 트래킹 시스템인 호크아이를 들여왔다. 데이터의 범위가 확장되고, 양이 늘어났다. 구단마다 통계처리와 분석에 능한 인력이 필요해졌다.
변화된 인적 구성이 늘 조화를 이루는 건 아니다. ‘현장’과 ‘분석가’ 사이 괴리는 메이저리그 구단에서도 흔하게 일어난다. 임창민은 “데이터 분석가를 전력분석 미팅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감독도 있다. 반대로 분석가의 역할이 커지면 선수에게 과잉 정보를 줘 자유도를 저해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건 균형을 찾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김휘집은 프로 4년 차 젊은 선수다. 하지만 그가 느끼기에도 지금 한국 야구 시스템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는 “어렸을 때는 경험과 직관에 의존해 훈련을 하고 경기 전략을 세웠다. 지금은 지표와 숫자를 바탕으로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학생 선수들도 스포츠과학에 관심이 높다. 어려서부터 야구 아카데미나 트레이닝센터 등에서 훈련을 한다.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야구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는 한 참가자가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 내 아카데미나 센터의 수준은 어떤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임창민은 2018년과 2019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재활훈련을 한 경험이 있다. 그는 “미국은 스포츠를 선도하는 나라다. 하지만 과거 다른 분야에서보다는 격차가 훨씬 좁혀졌다. 한국에도 유능한 분석가가 많다. 하지만 그들이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시스템에서 차이가 난다”라고 답했다.
한국 야구는 최근 세계 야구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지체 현상을 겪고 있다. 국제대회 성적을 기준으로 U-18(18세 이하) 레벨에서는 성과가 이어지고 있지만 프로 국가대표팀은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다. 한국 야구에서 스포츠과학의 수용 정도가 낮다는 게 큰 이유로 꼽힌다. 이번 야구학회에 참석한 김지훈 고려대 감독은 “지금 선수는 과거와 다르다.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지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그만큼 지도자가 공부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과는 반대로 일본 야구의 최근 국제대회 성취는 엄청나다. 선수 기량 자체가 10년 전보다 훨씬 향상됐다. 일본 야구 문화는 한국보다 훨씬 보수적이라고 알려져왔다. 그럼에도 지금은 프로와 아마추어 모두에서 스포츠과학과 혁신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 학회에는 모리모토 료타 ‘넥스트베이스’ 애널리스트가 참가했다. 넥스트베이스는 선수 기량 향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본 야구 아카데미로 일본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그는 “여전히 데이터 분석에 적대적인 지도자가 많다. 하지만 선수들이 달라졌다. 능동적으로 새로운 분석·훈련 방법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어른들도 변한 것이다”라고 일본 야구의 변화를 설명했다.
임창민과 김휘집은 지금 한국 야구 선수들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말하고 보여줬다. 이제 지도자와 구단이 달라질 차례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투수는 무조건 잘 치는 타자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요?” 삼성 라이온즈 투수 임창민(39)이 물었다. 지난해 12월21일 서울 동국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야구학회 겨울 학술대회에 참석한 청중을 향해서였다. 임창민은 NC 다이노스 내야수 김휘집(23)과 함께 이날 ‘프로야구 선수의 눈으로 본 세이버메트릭스’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지난해 구원투수로 28홀드를 따낸 임창민의 첫 ‘자답’은 이랬다. “이 선수 타석 때는 안 나가야 합니다.” 청중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투수가 타자를 고를 수는 없다. 임창민은 “타자의 볼카운트별 스윙 빈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코스 등을 사전에 연구한다. 정확하게 던지면 타자를 잡을 수 있는 코스가 있다.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내가 진다”라고 말했다. 다른 식으로도 설명했다. “강한 상대를 만나면 단 한 번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 강한 사람은 기회를 여러 번 받지만 약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한 번의 기회’에서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데이터를 파고든다는 의미로 들렸다.
야구라는 ‘전쟁’에서 적을 아는 것만큼이나 나를 아는 게 중요하다. 임창민은 데이터를 통해 자신이 어떤 투수인지 파악하고 있다. “나는 릴리스포인트(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의 위치) 높이가 150∼170㎝일 때 가장 좋은 공을 던진다. 패스트볼 수직 무브먼트 값이 큰, 좋은 투수는 대개 수평 무브먼트가 0에 가까울수록 좋다. 하지만 나는 수직 무브먼트가 좋으면서도 수평 무브먼트가 30㎝ 정도일 때 최상이다. 이 공에 타자 헛스윙률이 높다”라고 표현했다.
임창민보다 13년 늦게 프로에 입문한 국가대표 내야수 김휘집은 경기 기록뿐 아니라 구장에 출근해서 처음 시작하는 가동성·코어 운동부터 웨이트트레이닝, 실내훈련, 야외훈련, 전력분석 미팅, 경기 시작 이후까지 숫자로 표시되는 많은 것을 ‘데이터’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데이터를 통해 체력 향상, 부상 방지, 기량 향상, 경기 플랜 수립을 위한 객관적 근거를 찾고 자신에게 맞는 목표를 설정하려 한다. 그는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되어야 좋은 플레이가 나온다. 슬럼프에 빠진 선수에게는 뭔가 변화가 있다. 데이터를 통해 변화를 확인하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목표를 세울 수 있다. 근거가 있는 훈련을 하면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세이버메트릭스는 넓은 의미로 ‘야구에 대한 객관적 지식 탐구’를 뜻하는 용어다. 그래서 스포츠과학의 한 장르로 볼 수 있다. 1970년대 미국 야구 애호가들의 연구에서 시작해 1990년대 이후 메이저리그 구단 운영의 주류가 됐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소개됐다.
야구는 세이버메트릭스 이전에도 ‘기록의 스포츠’였다. 한국 야구에서 ‘데이터 야구’의 선구자로 꼽을 수 있는 이는 재일동포 출신 김성근 전 한화 감독이다. 그는 1960년대 실업야구 기업은행 감독 시절부터 상대 타자들의 타구 분포를 기록해 야수 수비 위치를 조정했다. 1980년대 프로야구 강타자 장효조는 매일 ‘야구 일기’를 쓰며 상대와 자신을 분석했다. 이런 선수가 적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프로 구단들은 전력분석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LG 트윈스가 1997년 일본 자매 구단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시스템을 수입했고, 삼성은 2년 뒤 그룹 계열사인 삼성 SDS에 의뢰해 자체 시스템을 제작했다.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워낙 좋은 선수가 많았던 KIA의 경우, 전력분석 시스템 도입이 늦은 편이었다. KIA는 2003년 플레이오프에서 SK에 3전 전패로 탈락한 뒤 시스템 도입을 결정했다. 데이터 분석 역량에서 뒤진 게 패인이라는 판단이었다. 1999년 설립된 스포츠 통계회사 스포츠투아이는 2001년부터 전산화된 기록 데이터를 각 구단에 제공했다.
2010년대에는 또 다른 변화가 생긴다. 세이버메트릭스에 영향을 받은 분석가들이 구단에 고용됐다. 이전까지 분석 업무는 야구선수 출신 프런트 직원이 담당했다. 이 시기 구단들은 투구와 타구 궤적을 추적하는 트래킹 시스템을 도입했다. 전력분석 시스템 도입이 가장 늦었던 KIA는 2022년 기술적으로 가장 앞선 트래킹 시스템인 호크아이를 들여왔다. 데이터의 범위가 확장되고, 양이 늘어났다. 구단마다 통계처리와 분석에 능한 인력이 필요해졌다.
변화된 인적 구성이 늘 조화를 이루는 건 아니다. ‘현장’과 ‘분석가’ 사이 괴리는 메이저리그 구단에서도 흔하게 일어난다. 임창민은 “데이터 분석가를 전력분석 미팅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감독도 있다. 반대로 분석가의 역할이 커지면 선수에게 과잉 정보를 줘 자유도를 저해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건 균형을 찾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선수들이 달라지니 어른들도 변했다”
김휘집은 프로 4년 차 젊은 선수다. 하지만 그가 느끼기에도 지금 한국 야구 시스템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는 “어렸을 때는 경험과 직관에 의존해 훈련을 하고 경기 전략을 세웠다. 지금은 지표와 숫자를 바탕으로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학생 선수들도 스포츠과학에 관심이 높다. 어려서부터 야구 아카데미나 트레이닝센터 등에서 훈련을 한다.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야구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는 한 참가자가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 내 아카데미나 센터의 수준은 어떤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임창민은 2018년과 2019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재활훈련을 한 경험이 있다. 그는 “미국은 스포츠를 선도하는 나라다. 하지만 과거 다른 분야에서보다는 격차가 훨씬 좁혀졌다. 한국에도 유능한 분석가가 많다. 하지만 그들이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시스템에서 차이가 난다”라고 답했다.
한국 야구는 최근 세계 야구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지체 현상을 겪고 있다. 국제대회 성적을 기준으로 U-18(18세 이하) 레벨에서는 성과가 이어지고 있지만 프로 국가대표팀은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다. 한국 야구에서 스포츠과학의 수용 정도가 낮다는 게 큰 이유로 꼽힌다. 이번 야구학회에 참석한 김지훈 고려대 감독은 “지금 선수는 과거와 다르다.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지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그만큼 지도자가 공부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과는 반대로 일본 야구의 최근 국제대회 성취는 엄청나다. 선수 기량 자체가 10년 전보다 훨씬 향상됐다. 일본 야구 문화는 한국보다 훨씬 보수적이라고 알려져왔다. 그럼에도 지금은 프로와 아마추어 모두에서 스포츠과학과 혁신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 학회에는 모리모토 료타 ‘넥스트베이스’ 애널리스트가 참가했다. 넥스트베이스는 선수 기량 향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본 야구 아카데미로 일본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그는 “여전히 데이터 분석에 적대적인 지도자가 많다. 하지만 선수들이 달라졌다. 능동적으로 새로운 분석·훈련 방법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어른들도 변한 것이다”라고 일본 야구의 변화를 설명했다.
임창민과 김휘집은 지금 한국 야구 선수들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말하고 보여줬다. 이제 지도자와 구단이 달라질 차례다.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