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합] [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371] 왜 ‘재갈’이라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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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입에 재갈을 물린다’라는 표현이 있다.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다. 재갈은 원래 말을 부리려고 아가리에 가로 물리는 막대이다. 비유적으로 의미가 더해져서, 소리를 내거나 말하지 못하도록 사람 입에 물리는 물건까지 가리키게 됐던 것이다.
재갈이라는 말은 한자 훈(訓)에서 나온 것이다.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을 한자로 ‘재갈 함(銜)’ 이라고 쓰는데 재갈이라는 훈에서 따온 말이다.
한자 ‘銜(함)’은 재갈, ‘啣(함)’은 재갈 물림을 뜻한다. 입에 재갈 물은 듯, 어르신 이름자를 조심스레 여쭙는 것을 ‘기휘’라고 한다. 어르신 이름은 ‘함자(銜字)’라고 높여서 표현한다. 재갈이나 재갈 물림은 오늘날 명함이란 말에도 남아있다. 네임카드를 일본에서는 ‘명자(名刺)’, 중국에서는 ‘명편(名片)’이라 한다. 그런데 우리만 독특하게 ‘명함(名銜, 名啣)’이라는 말을 만들어 쓴다. 상대에 대한 공경이 담긴 표현이다.
재갈의 옛말은 ‘쇠혀’ 또는 ‘쟈갈’이다. 조선 순조 연간(1824년)에 한글학자 유희(柳僖)가 저술한 ‘물명유고’에 마구와 관련한 어휘에 따르면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을 당시 일상어인 ‘쇠혀’라고 표현했다.
재갈은 영어로 ‘gag’라고 말한다. ‘gag’는 동음이의어가 많다. 재갈의 의미로 쓰려면 앞에 수식어를 붙이거나 아예 다른 단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 ‘horse gag’, ‘ball gag’ 등이 그 예이다. 영어용어사전에 따르면 ‘gag’의 원래 의미는 ‘재갈, 입막음, 재갈을 물리다’이다. 그 어원 자체도 ‘숨을 막다’ 또는 목에 무언가 걸려서 ‘캑!’하고 뱉는 의성어로 추정된다. 고대 노르만어 ‘gaghais’를 거쳐 중세 영어로 차용됐다.
재갈은 여러 마구들 중에서 가장 먼저 개발됐다. 따라서 재갈은 역사상 마구의 변화과정을 유추해 나가는데 장요한 장구라 할 수 있다. 재갈 변천에 따른 시대구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재갈은 보통 금속의 막대로 만들어지며 양쪽 끝에 고리를 달아 고삐를 연결한다. 이것을 말에게 물린 후 고삐를 잡아당기면 잡아당긴 방향으로 말머리가 움직이며 진행방향도 그쪽으로 바뀐다. 양쪽의 고삐를 모두 당기면 멈춘다. 이 도구의 발명으로 인간은 자신보다 훨씬 크고 힘이 센 말이라는 짐승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육할 수 있게 되었다. (본 코너 1370회 ‘왜 ‘고삐’라고 말할까‘ 참조)
우리나라에서 재갈은 원삼국시대 전후부터 삼국시대까지 주로 분묘유적에서 출토된다. 수레를 끄는 말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실제로 수레 부속구와 함께하는 예가 적지 않다. 이후 4세기에는 승마용의 재갈이 북방에서 남부지역으로 도입되면서 새롭게 발전했다.
재갈은 굴레하고 혼동하기 쉽다. 재갈은 입에 물리는 금속 막대고 굴레는 머리 부분에 씌우는 가죽 끈을 말한다. 재갈의 고리 부분에 걸어서 재갈이 떨어지지 않는 역할을 하는 게 굴레이다. 재갈의 링에는 굴레와 고삐가 모두 연결돼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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